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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안 (고려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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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
정안(鄭晏)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, 본관은 하동(河東), 초명은 정분(鄭奮), 자는 화경(和卿)입니다. 정안은 최씨정권 하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, 불교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.
주요 활동:


  • 관직:
  • 진양(晉陽: 현 경상남도 진주시) 수령
  • 국자좨주(國子祭酒)
  • 1241년(고종 28) 동지공거(同知貢擧)로 과거 주관
  • 1251년(고종 38) 지문하성사(知門下省事)
  • 참지정사(參知政事)

  • 최씨정권과의 관계:
  • 정안의 가문은 최씨정권을 지탱했던 4대 가문 중 하나인 하동 정씨였습니다.
  • 정안은 최우(崔瑀)의 조카이며, 최우의 추천으로 관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.
  • 최우의 정방원(政房員)으로서 권세를 누리기도 했습니다.
  • 최항(崔沆)이 집권하자 최항을 비판하다가 유배되어 살해되었습니다.

  • 불교 관련 활동:
  •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명산대찰을 순방하고 사재를 희사했습니다.
  • 1249년(고종 36) 남해(南海)의 사제(私第)인 강월암(江月庵)을 정림사(定林社)로 개칭하여 중창했습니다.
  • 『팔만대장경(八萬大藏經)』 간행에 참여하고, 별도로 『묘법연화경(妙法蓮華經)』을 비롯한 6종의 불서를 간행했습니다.
  • 분사대장도감(分司大藏都監)이 남해에 설치되는데 정안의 재정적 후원이 배경이 되었습니다.

사망:정안은 문생들과 시사를 논할 때 최항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비판하다가 그 말이 알려져 가산이 적몰되고 백령도(白翎島)에 귀양갔다가 살해되었습니다. (1251년)

정안 (고려)
인물 정보
이름정안(鄭晏)
시대고려 (12세기)
생애? ~ 고종 38년(1251년)
관직지문하성사(知門下省事), 참지정사(參知政事)
가문하동(河東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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